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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아니지만 잠시 머물고픈 마음, 신축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한걸음 오늘 2025. 4. 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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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우연히 들른 낯선 동네에서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 섰다.

아직 입주가 시작되지 않았는지 창문엔 커튼도, 불빛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곳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해 보였다.

정돈된 단지의 산책로, 갓 심은 나무들, 깨끗이 닦인 벤치와 놀이터. 사람의 체온이 아직 채 스며들지 않은 공간인데도, 어쩐지 잠시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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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나는 내 집이 없다.

월세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고, 내 이름 석 자 적힌 집 한 채 가지는 게 이렇게 먼 꿈일 줄 몰랐다.

하지만 그날, 그 아파트 단지 앞에서 문득 ‘소유’가 아닌 ‘머무름’에 대한 마음이 찾아왔다.

꼭 내 집이어야만 따뜻할 필요는 없다고, 언젠가 스쳐 지나가는 곳일지라도 그 순간의 편안함과 안락함이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축 아파트 단지는 늘 깨끗하다.

전등도 아직 밝고, 벽에는 어떤 흠집도 없다. 잔디밭엔 발자국 하나 없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놀이터엔 적막함 대신 설렘이 감돈다.

이곳에 누군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묘하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는 그 단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분양 현수막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벤치 위엔 낙엽 한 장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잠시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살이 아파트 외벽에 부서지며 부드러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 아래에서, 내 삶의 쉼표 같은 순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 집’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부담이자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집은 곧 사람이 머무는 곳이고, 그 사람이 나를 편안하게 느끼는 순간이 곧 집이 아닐까. 그날의 나는, 그곳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내려놓고 따뜻한 상상을 했다.

누군가의 집이 될 공간에서, 나도 잠시 안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우리는 종종 삶에서 무엇을 가지느냐에 집중한다. 하지만 때로는 ‘어디에 잠시 머물렀는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기억이 된다.

그날의 아파트 단지는 나의 것이 아니었지만, 나의 마음이 머물렀고, 나의 시선이 따스함을 담았으며, 나의 발걸음이 천천히 걸어도 좋을 만큼 평온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될까. 아니, 어쩌면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머무르고 싶은 곳, 머무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면, 이미 우리는 충분히 따뜻한 삶의 한 장면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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